여중시절이었을 것이다. 화장대에 놓여있던 엄마의 크림을 바른 적이 있다. 내가 사용하던 주니어용 제품과는 달리, 쫀득쫀득하면서 한 겹을 살짝 덧씌운 느낌. 엄마는 영양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에야 크림 하나만 해도 수분크림, 탄력크림 등 여러 가지이지만 그때만 해도 크림 앞에는 당연히 ‘영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로션은 수분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지만 크림은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에 반드시 발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에센스라는 제품이 등장했다. 로션의 3분의 1 사이즈밖에 되지 않으면서 가격은 훨씬 더 비싼 이 제품은 ‘영양이 농축’되어 ‘피부 깊숙이’ 영양을 공급한다고 했다. 심지어 어느 화장품 CF는 화장품을 ‘피부가 먹는 음식’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왕지성에 여드름 피부라 지금까지 로션 하나만 발랐는데 이제는 피부에 신경을 좀 써줘야 할 것 같아요.” “벌써 20대인데 아직까지 주니어용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어요. 피부에 영양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여성들은 지금까지의 피부 방치(?)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 많은 화장품을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화장품을 적게 써서 나타나는 피부 트러블보다 화장품을 많이 써서 나타나는 피부 트러블이 몇 배나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화장품에서의 영양이란 무엇인가. 피부 표면을 보호하면서 촉촉하고 건강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것은 피지이다. 화장품의 기본 기능은 부족한 피지를 보충해주는 것, 즉 화장품에서 영양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결국은 유분이 더 많은 것을 뜻한다. 화장품 속의 단백질, 비타민A·C·E 등 역시 피부에 흡수되기보다는 피부 표면의 보호, 방어기능으로써 작용한다. 즉 화장품에서의 영양은 음식이라기보다 외투에 가까운 것이다.
흔히 수면 중 피부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그로 인해 영양흡수가 더 잘된다고 생각해 나이트 크림을 바르지만, 오히려 과잉의 유분 공급은 밤 사이에 이뤄지는 피부의 노폐물 배출을 방해할 수 있다. 그보다는 낮 동안의 유해환경과 메이크업 등으로 지친 피부에 최소한의 제품만을 발라 피부를 가급적 쉬게 해주는 것이 더 좋다.
그렇다면 피부는 어떻게 영양을 공급받는가? 다른 신체기관과 마찬가지로 피부 역시 모세혈관을 통해 우리가 섭취한 음식으로부터 영양소를 공급받는다. 육체가 혹사되면 그것은 바로 피부건강과 직결된다. 수면과 운동 부족으로 신진대사가 저하되고 제대로 된 식습관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화장품만 덕지덕지 발라 피부가 좋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피부가 푸석해지고, 윤기를 잃어가기 시작한다면 생활습관을 바꿔라. 피부에 산소와 영양 공급을 방해하는 담배, 카페인을 끊고 영양소의 균형이 맞춰진 식단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